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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앞에서 돌아보는 한국군 해외 파병의 역사

역사

호르무즈 앞에서 돌아보는 한국군 해외 파병의 역사

김원·읽기 15분

’파병’을 마주하는 마음

다소 개인적인 이야기로 글을 시작해 보자. 필자는 군복무를 특전사 산하 파병전담부대인 국제평화지원단에서 했다. 군복무 18개월 동안 레바논의 동명부대 26-28진, 아랍에미리트의 아크부대 20-22진, 남수단의 한빛부대 15-17진까지 총 아홉 번의 해외 파병이 이루어졌다. 국방부 홍보자료와 언론보도에 등장하는 파병 인원 중에는 군생활 당시 실제로 알고 지낸 장교와 부사관이 여럿 있다.

파병과 직접 연계되는 공간에 잠시나마 몸을 담았기에, 한국군의 해외 파병이 이슈가 될 때마다 심경이 복잡해졌다. 나와 함께 일상을 보냈던 이들이 부정한 해외 전쟁에 참가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그들의 이름을 신문 부고란에서 보게 된다면? 직접 파병되거나 전투에 참가한 건 아니더라도, 해당 부대에서 복무했던 나도 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건 아닐까? 이란 전쟁이 본격화되고 트럼프 정부가 한국군 파병을 압박하자, 이 질문들은 ‘만약’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이재명 정부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논란은 다소 사그라들었지만, ’청해부대 강화’를 통한 우회 파병을 시사하며 불씨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이라크 파병을 포함한 과거 한국의 해외 파병 사례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한국의 파병 역사와 현실에 대한 검토는 당면한 파병 논쟁을 보다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맥락에서 이해하고, 이에 대한 반전평화운동의 대응 방향을 모색하는 데에 있어 중요하다.

'청해부대 강화'를 통한 호르무즈 해협 우회 파병을 암시하는 이재명 대통령. 출처: 한겨레TV

미국, 반공주의, 그리고 파병

한국군의 해외파병 역사는 파병의 목적과 국제정치적 성격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한국이 특정 국가의 전쟁행위를 지지하며 해당 국가가 구상한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는 경우이다. 주로 한국과 외교, 군사, 정치, 경제 등 모든 방면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의 전쟁이 그 대상이 되었다.

잘 알려져 있듯 박정희 정권의 베트남 파병은 한국군 최초의 해외파병일 뿐만 아니라, 반공주의 안보관과 국가 주도 경제성장을 통해 권위주의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던 냉전기 한국 지배세력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집약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한국현대사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965년 창설된 주월한국군사령부 소속으로 1973년까지 베트남에 파병된 약 32만 5천 명의 병력은 미국을 제외한 해외 참전국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박정희 정권은 파병 직후인 1966년 주한미국대사 윈스럽 브라운과 외무부장관 이동원이 체결한 ‘브라운 각서’를 통해 군사, 경제원조와 차관, 한국 기업의 군수물자 및 용역 조달 기회를 확보했다. 파병 장병의 송금과 베트남전쟁 특수로 인한 한국 기업의 건설, 군수, 운수산업 등 관련 산업 진출과 수출 확대는 외화 획득과 국내 산업 성장에 기여하기도 했다.

케네디 대통령과 베트남 파병에 합의하는 박정희 / 1965년 주월한국군 백마부대의 출정식. 출처: 중앙일보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당시 박정희 정권이 미국의 요구를 수동적으로 수용 및 수행하는 것을 넘어 독자적인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박정희는 5·16 쿠데타 직후인 1961년 11월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먼저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제안했지만, 당시 미국은 시기상조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선제적 파병 제안의 배경에는 주한미군의 베트남 이동을 방지하고, 군사·경제원조를 확보하여 안보 유지와 경제개발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계산이 자리하고 있었다.1

이후 베트남 전쟁이 확대되면서 미국이 한국군의 대규모 파병을 요청하자, 박정희 정권은 이를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위한 레버리지로 활용했다. 이는 한국의 해외파병이 시작부터 미국 중심 국제질서에서 반공 기지국가로서 부여받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비대칭적 관계 속에서도 한국 지배세력이 자신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능동적으로 추구하는 수단이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베트남 전쟁 이후 한국의 미국 주도 전쟁 파병은 비전투 병력을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작게 이루어졌다. 1991년 걸프 전쟁에는 300여 명의 의료지원과 공군수송 병력이 연합군의 일원으로 파병되었는데, 이는 베트남 전쟁 이후 한국군의 첫 해외 파병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는 2001년 의료지원부대 동의부대, 2003년 공병부대 다산부대, 2011년 지역재건과 경비지원, 항공지원 등을 담당한 오쉬노부대가 차례대로 파병되었다. 이라크 전쟁의 경우 2004년 자이툰부대가 파병되어 쿠르드 자치구의 수도인 아르빌에서 민사지원과 공병지원, 의료지원 등의 임무를 맡았다. 넓게 보자면 오늘날 소말리아 해역에 파병되어 미군 주도 연합기동부대의 전술통제를 받는 청해부대 역시 이 범주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2004년 2월 자이툰 부대 창설식 / 2004년 12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자이툰 부대 방문. 출처: 국가기록원 / 청와대 사진기자단

그러나 비전투 임무수행이라 하더라도 결국 전쟁을 일으킨 미국 주도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매 파병 때마다 정부는 국내 반전평화운동의 반발을 마주해야 했다. 특히 이라크 전쟁 참전의 경우 전쟁 자체의 명분 부족은 물론이고 미국과 영국에 이어 연합군 내 3위에 해당하는 파병 인원 수 때문에 더욱 큰 논쟁이 일었다.

당시 진보정당과 시민사회운동을 중심으로 반전운동이 크게 일었고 현지 반군이 한국 정부에게 직접 철군을 요구했으며, 2004년에는 한국 국민 김선일 씨가 이슬람 극단주의 성향 반군 유일신과 성전(후일 테러단체 IS의 모태가 된다)에 의해 피랍되어 결국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파병을 결정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사후 출간된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파병이 “옳지 않은 선택”이었음을 인정하면서도, “대한민국은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힘을 빌려야 할 일이 많다. 경제적으로도 미국과 원만하게 지내야 한다”며 미국과의 관계 설정 문제가 결국 결정적이었음을 토로했다. “언젠가는 옳지 않은 전쟁에 대한 파병 요청을 거절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올 것이다”2는 그의 회한 어린 회고는, 한국의 미국 주도 제국주의 전쟁 참전에 얽힌 정치적·윤리적 모순과 한미관계의 구조적 제약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유엔 평화유지군과 파병

두 번째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의해 구성된 유엔 평화유지군의 형태로 파병된 경우이다. 1993년 소말리아를 시작으로 1994년 서사하라, 1995년 앙골라, 1999년 동티모르(상록수부대), 2007년 레바논(동명부대), 2010년 아이티(단비부대), 2013년 남수단(한빛부대) 등 한국의 유엔 평화유지군 파병은 냉전 이후 한국 대외 군사정책의 핵심 영역 중 하나로 지속적으로,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1999년 동티모르에서 작전 수행 중인 상록수부대 / 2020년 레바논에서 작전 수행 중인 동명부대. 출처: 국방홍보원 /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유엔 평화유지군의 역할과 실효성에 대해서는 그간 많은 비판이 있어 왔다. 분쟁을 적극적으로 제어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에, 훈련과 장비, 예산의 부족으로 활동의 실효성이 제약되며, 일부 평화유지군에 의한 대민범죄와 성범죄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평화유지군의 설치와 임무를 결정하는 권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있기에 평화유지 활동 자체가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입김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동명부대가 참여 중인 레바논 유엔평화유지군(UNIFIL)의 사례는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978년 창설된 UNIFIL은 레바논에 가해지는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막지 못한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아 왔다. 2006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이후 UNIFIL을 확대하여 동명부대 파병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안보리 결의안 1701호3의 경우에도, 헤즈볼라에게는 완전한 무장해제를 요구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공격적 군사작전’의 중단만을 요구하는 등 미국과 서방의 이해관계가 반영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이 시작되고 2024년 9월 23일 레바논 공습으로 확전된 이후 UNIFIL은 이스라엘군의 직접 공격 대상이 되기까지 했다.4 이후 트럼프 정부의 압박으로 2025년 8월 28일 안보리가 2026년을 마지막으로 임무를 종료한다는 내용의 결의안 2790호를 통과시키며, UNIFIL은 역사의 뒤안길로 씁쓸히 사라지게 되었다.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을 강대국 주도의 제국주의적 전쟁활동과 동일 선상에 놓고 평가할 수는 없다. 평화유지 활동의 실효성 문제와는 별개로, 이 자체가 제국주의적 역할을 온전히 수행한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평화유지군이 유의미한 역할을 한 사례 역시 적으나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평화유지활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강대국 중심 국제질서에 내재된 권력 관계와 그 속에서 발생하는 평화유지활동의 모순을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해 왔는지는 여전히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능동적 파병’의 시대

마지막 세 번째는 다국적군이나 평화유지군과 관계없이 한국이 해당 국가와 직접 협의해 재해복구나 군사훈련을 목적으로 파병하는 경우이다. 2013년 필리핀 정부의 요청에 의해 파병되어 태풍 피해 복구 민사 임무를 수행한 아라우부대, 2011년 아랍에미리트(UAE) 정부의 요청에 의해 파병되어 UAE군에 대한 연합훈련 및 교육훈련 지원 임무를 수행중인 아크부대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UAE군에 대한 군사훈련을 진행 중인 아크부대. 출처: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특히 아크부대의 경우에는 미국의 전쟁 수행이나 유엔 평화유지활동과 관계없이 한국 정부가 자체적으로 해당 정권과 협의해 특수전 전투병력을 파병한 사례라는 점에서 한국 파병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한국군의 해외 파병이 기존의 미국 주도 군사작전 참여나 유엔 평화유지활동을 넘어, 자체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국가와 직접적인 군사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이를 위해 자국의 군사력을 해외에 전개하는 형태로까지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아크부대의 이러한 활동은 중동 정세를 둘러싼 한국의 경제-군사적 활동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실제로 한국과 UAE는 2009년 바라카 원전 건설사업 수주, 2013년 한-UAE 상호군수지원협정 체결, 2018년 국방과학기술협력 MOU, 2022년 국산 중거리지대공미사일 천궁-II 수출계약 체결 등 경제와 군사안보 모두에서 아랍에미리트와의 밀월 관계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는 ‘자원 외교’ ‘세일즈 외교’를 내세운 이명박 정권 때 본격화되었으나, 정권이 교체된 뒤에도 일관적으로 추진되며 한국 외교 안보 정책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UAE와의 관계를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방산협력을 확대했다. 이는 아크부대를 중심에 둔 한국-UAE의 경제·군사협력이 특정 정권의 일회적 정책을 넘어 한국이라는 국가와 자본의 지속적인 대외적 이해관계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2018년 아크부대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출처: 연합뉴스

한국 자본주의의 대외 팽창과 군사주의의 능동적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이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전의 파병과 같이 이미 주어진 판에 끼어 활로를 모색하던 시절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특정 지역의 지배세력과 거래를 맺고 한국 군산복합체 자본의 활로를 주체적으로 창조해 그 세력권을 확대해 나가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한국은 글로벌 자본주의-제국주의 체제에서 미국의 ‘모범 제후국’이라는 위치를 넘어, 제한적이나마 독자적인 세력권을 구축하는 ‘소(小) 제국’으로서의 성격까지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를 위한 국익, 누구를 위한 국위선양?

이처럼 한국의 해외파병은 지난 60여년 간 여러 변화를 겪어 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러한 해외파병의 역사에서 두 가지 일관된 특징을 읽어낼 수 있다.

첫째, 한국의 해외 파병은 당대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치에 크게 영향을 받아 왔다. 냉전기 베트남 파병의 주요한 목적이 반공 기지국가로서 미국으로부터 최대한 많은 지원을 확보하는 데 있었다면, 탈냉전기 아랍에미리트 파병은 세계화된 자본주의 질서 하 한국의 경제·군사안보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목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두 파병의 이러한 성격 차이는 바로 한국이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차지하는 위치의 변화에서 비롯된다.

둘째, 파병의 명분이 이념이나 가치보다 ‘국익’ ‘실익’과 같은 물질적 이해관계와 연관된 경우가 많다. 반공이라는 매우 분명한 이념적 명분이 존재했던 베트남 파병의 경우에도 결국 핵심 고려사항은 파병을 통한 ‘특수’, 즉 당시 박정희 정권이 추진하던 국가 주도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본과 외화의 확보였다. 중동 국가들에 대한 파병에서도 전쟁을 둘러싼 핵심 쟁점들에 대한 가치판단은 거의 없었다. 이는 명목상으로나마 ‘자유’ ‘민주주의’ 등 가치 차원에서 파병의 명분을 찾는 경우가 많은 미국이나 타 서방 국가들의 파병과 비교할 때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정부 공식 발간물에 등장한 '파병으로 국익창출'이라는 문구. 출처: K-공감 정책브리핑

파병을 정당화하는 군과 정부의 공식 선전에는 ‘국익’ ‘국위선양’과 같은 표현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최근 사례로는 2024년 UAE 아크부대를 방문한 신원식 당시 국방부장관이 장병들에게 “형제의 나라인 UAE와 긴밀히 협력하는 것이 곧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맡은 바 임무에 매진할 것”5을 당부한 바 있고, 2025년 국회에 제출된 아크부대 파견 연장 관련 검토자료에는 아크부대 파병에 힘입은 한국과 UAE 간 경제·정치·국방 분야 교류 확대가 ’국가 이익 구현과 국위선양, 전투력 향상에 기여’했다는 내용이 등장했다.

파병이 곧 국익 증진과 국가 위상 제고에 직결된다는 한국 정부의 공식 서사에는, 그러나 그 ‘국익’과 ‘국위’가 과연 누구의 이익이며 위상인지, 파병에 수반되는 비용과 위험은 누가 부담하는지와 같은 비판적 질문이 설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오늘날 한국 반전평화운동의 최우선 과제는 ’파병이 곧 국익이고, 국익이 곧 국민 전체의 이익’이라는 식의 논리를 깨부수는 것이다.

해외 파병을 통해 한국 기업이 대규모 건설사업을 수주하고, 대규모 방산계약을 맺으며,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상승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파병이 한국 노동자·시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까지 연결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외려 파병에 따르는 재정적 부담과 군사적 위험을 국가 전체의 비용으로 감당하면서 새로운 부담이나 위기로 작용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K-파병’과 ‘K-방산’의 화려한 성공 수사를 통해 국가와 자본의 이해관계를 국민 전체의 이해관계로 둔갑시키려는 한국 정부와 기업의 의도를 폭로하고 알리는 것이 반전평화운동 진영의 과제인 이유다.

'K-방산'을 무비판적으로 상찬하는 한국 언론. 출처: YTN

’베트남 특수’는 여전히 한국의 파병 논의에서 ’과거의 영광’으로서 잊을 만하면 등장한다. 그러나 베트남 파병이 한국 경제에 양적 성장을 가져온 것과 별개로, 성장의 과실을 소수 재벌들에게 집중시키고 내수보다는 수출 중심의 경제체제를 고착화시키는 등 그 구조적 왜곡의 심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파월 노동자들 사이에서 임금체불이 만연하고 고엽제 등으로 피해를 입은 파병 군인들에게 오랫동안 제대로 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 역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베트남 특수’의 어둠을 기억하는 것은, 파병을 통한 ‘국익’ 이면에 존재하는 사회적 비용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시작점이 된다. 마찬가지로 파병이 가져온다는 ‘국위선양’이 과연 누구의 위상을 어떻게 제고한다는 것인지도 따져 물어야만 한다. 전쟁으로 한국 자본이 돈을 많이 벌어들이고 주가가 올라가면, 그것만으로 한국의 명예는 보장되는 것인가?

과거 베트남 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 문제부터 아크부대가 훈련시킨 UAE군이 예멘·수단 내전에 참전하여 민간인 피해를 유발하는 등, 한국의 해외 파병은 직간접적으로 이미 여러 윤리적 문제를 빚어 왔다. 전쟁범죄와 인권침해에 대한 직간접적 연루와 그 책임을 외면하는 태도야말로, 어쩌면 한국의 ‘국위선양’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일지 모른다.

2018년 한국 국회 소통관에 선 베트남전 당시 주월한국군에 의한 학살 생존자들. 출처: 노컷뉴스

반전평화의 이름으로 ‘오멜라스 공화국’에 맞서자

어슐러 K. 르 귄의 단편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는 모두가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가상의 도시 오멜라스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번영의 이면에는, 도시의 어느 지하실에 한 아이가 감금되어 비참한 고통을 겪어야만 행복과 풍요가 유지 가능하다는 끔찍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시민들은 성장하면서 이 비밀을 알게 되지만, 대부분은 자신들의 평안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질서를 거부하고, 자신들이 누리던 안락한 삶을 뒤로 한 채 새로운 삶을 찾아 오멜라스를 떠난다. 르 귄은 이 이야기를 통해 다수의 번영과 행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나아가 타인의 고통 위에 세워진 풍요를 과연 진정한 행복이라 부를 수 있는지 독자들에게 묻는다.

어슐러 K.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한국에서 해외 파병의 성과에 대한 무비판적 찬사가 이어질 때마다, 나는 르 귄의 소설 속 오멜라스를 떠올리게 된다. 앞서 해외 파병이 ‘국익’과 ‘국위선양’에 진정 도움이 되는지 물었지만, 어쩌면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는지 모른다. 해외 파병이 정말로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고 할 때, 현재 언론과 정치권이 그러하듯, 우리는 여기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면 되는 것인가?

파병으로 한국 자본이 사업을 따내고 주가가 오르는 일이 한국인들에게 정말로 도움이 된다고 한다면, 베트남의 학살 피해자들과 예멘 및 수단의 전쟁범죄 피해자들은 고통받아도 좋은 일인가? 지난 세기 식민지배와 전쟁, 학살, 독재와 같이 부조리한 국제질서가 낳은 폭력에 고통받았던 우리 한국인들은, 어느새 해당 폭력의 논리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여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르 귄의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파병 국가 대한민국’이라는 오멜라스를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국제평화지원단에 복무할 당시 매일 아침 점호 때마다 불렀던 국제평화지원단가에는 “조국의 명예와 세계의 평화 위해 대한의 정예부대 그 위상 높이자”는 내용의 가사가 있었다. 어쩌면 한국의 해외 파병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은 이 가사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이 파병을 통해 지키고 싶은 명예는 어떤 종류의 명예인가? 한국이 파병을 통해 지키고 싶은 평화는 어떤 종류의 평화인가? 파병 당사자들과 사회운동은 물론, 한국 사회 전체가 어렵게 답을 찾아야 할 질문들이다.


김원

동국대학교 맑스철학연구회 전 회장, 전환 국제연대팀장. 동국대학교와 고양시, 대학원생노조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넓고 멀리 보는 이론과 구체적인 공간에서의 실천을 겸비한 운동을 지향한다.

Footnotes

  1. 국가기록원, 박정희-케네디 회담 https://www.archives.go.kr/next/new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2766&pageFlag&sitePage&utm_ ↩

  2. 경향신문, “파병 거절해도 받아들여지는 시대” 희망한 노 전 대통령…23년 지나도 ‘파병 딜레마’ https://www.khan.co.kr/article/202609120800031 ↩

  3. Wikipedia,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Resolution 1701 https://en.wikipedia.org/wiki/United_Nations_Security_Council_Resolution_1701 ↩

  4. 경향신문, 이스라엘, 레바논 주둔 유엔 평화유지군까지 공격···국제사회 ‘격앙’ https://www.khan.co.kr/article/202410111002001 ↩

  5. 뉴스1, 신원식, 아크부대 장병 격려…“UAE 형제국가 되는 가교” https://www.news1.kr/diplomacy/defense-diplomacy/53111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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