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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니스' 시대 - 다들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달리고, 쉴까?

사회/사회 일반

'웰니스' 시대 - 다들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달리고, 쉴까?

최상희·읽기 18분

요즘 다들 이렇게 쉰다

주말 아침, 아니 평일 어느 시간대라도 도심 하천이나 운동장 트랙에 가면 형광 조끼를 맞춰 입은 사람들이 떼 지어 달리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러닝 크루다. 너무들 열심히 뛰어서 서초구 반포종합운동장은 5인 이상 단체 달리기를 막기까지 했다.1

서초구 반포종합운동장에 붙은 '5인 이상 단체달리기 제한' 시행 안내 현수막. 출처: 머니투데이

달리기로 끝나지도 않는다. 아스팔트가 지겨운 사람들은 산길을 뛰는 ’트레일러닝’으로 넘어가고, 그것도 모자라면 얼음물에 몸을 담그는 ’콜드플런지’를 한다. 친구끼리 사우나에 모여 땀 빼고 냉탕을 오가는 ’소셜 사우나’도 유행인데, 동네 목욕탕 아저씨들이 수십 년 해 온 일에 영어 이름이 붙은 것에 가깝다. 조금 지난 일이지만 편의점엔 ’저속노화 도시락’이 깔렸고, 회사들은 사우나와 냉수욕과 산행을 한데 묶은 ’웰니스 패키지’를 복지라며 내놓는다.

나도 올해 6월 처음으로 트레일러닝 대회에 나갔다. KOREA 50K라는 나름 명망 있는 대회라고 한다. 나는 가장 짧은 거리인 15K를 뛰었다.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유행이라고 하니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뛰는 것도 좋아하고 산도 좋아하는데 마침 춘천에서 열리는 대회라니 가 보고 싶었다. 그 뒤로도 주말이면 가끔 산에 간다. 트레일러닝을 하고 나서는, 등산을 끝내고 나서 스마트워치나 앱을 열어 지난번보다 빨랐는지부터 확인하게 되었다.

이걸 모두 묶어서 ’웰니스(Wellness)’라고 부른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질병이 없는 상태를 넘어서 삶의 질을 최적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상태’라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도 2026년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말로 ’웰니스 전환’을 골랐다.2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OECD에서 여섯 번째로 오래 일하는 나라다.3 오래 일하고, 열심히 달리고, 쉬는 것까지 열심히 한다. 다들 왜 이러는 걸까.

'웰니스의 여덟 차원'. 출처: 위키피디아

웰니스는 어떻게 일상이 됐나

문체부의 2025년 국민생활체육조사를 보자.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이 62.9%로 1년새 2.2%포인트 늘었다. 주로 달리기를 한다는 사람은 4.8%에서 7.7%로, 등산은 12.1%에서 17.1%로 뛰었다. 한 달에 운동에 쓰는 돈도 평균 6만 2천원으로, 1년 만에 1만 6천원이 늘었다.4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년 국민생활체육조사 결과.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그런데 같은 시기에 운동을 아예 안 한다는 사람도 늘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조사에서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023년 8.0%에서 2025년 12.7%가 됐다. 운동을 안 하는 이유로는 ’시간이 없어서’가 58.4%로 가장 많았다. 시간이 있으면 걷기나 수영을, 돈이 있으면 골프를 하고 싶다는 답도 눈에 띈다.5 다들 열심히 달리는 것 같아도, 달릴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여유가 없는 사람 사이는 조금씩 벌어지고 있다.

요즘은 웰니스가 혼자보다 같이 하는 쪽으로 흐르는 것도 보인다. 동네 모임 앱의 산책·달리기 모임은 2024년 말 기준 1년 전보다 두 배 넘게 늘었고6, 친구들끼리 사우나에 모여 땀 빼고 냉탕을 오가는 소셜 사우나도 “술 말고 사우나”라는 말과 함께 퍼졌다. 회식이나 동창회가 줄어든 자리를 운동 모임이 채우는 것이다.

이런 소셜 웰니스는 금방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노리는 수많은 브랜드와 기업들의 타겟이 되었다. 러닝화는 20만 원이 넘는 게 기본이 됐고, 신한카드 분석에 따르면 2024년 러닝 관련 소비는 30대에서 232%, 40대에서 225% 늘었다. 스포츠 브랜드들은 러닝크루 행사와 클래스를 직접 열고 장비를 지원하면서 커뮤니티를 마케팅 창구로 쓴다.

정부도 웰니스를 키우는 데 꽤 적극적이다. 문체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고른 ’우수 웰니스 관광지’는 2025년 88곳이 됐고, 같은 해 3월에는 치유관광산업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강원도에서는 2020년 평창·정선·동해가 웰니스 관광 협력지구로 묶였고, 2023년에는 정선이 첫 번째 ’올해의 웰니스 관광도시’로 뽑혔다. 춘천에 사는 입장에서 나름대로 반가운 소식이면서도, 강원도의 숲과 온천이 대개 수도권 사람들이 회복하러 오는 상품으로만 소개되는 건 좀 걸린다.

2023년 '올해의 웰니스 관광도시'로 선정된 강원도 정선군. 출처: G1방송

서울시는 저속노화 열풍을 이끈 의사를 건강총괄관으로 임명했고, 문체부는 운동하면 포인트를 쌓아 병원이나 약국에서 쓸 수 있게 하는 ’스포츠 참여 인센티브’를 넓혀 포인트를 주는 시설을 2025년 4천 곳에서 2026년 6천 곳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총체적인 건강과 회복을 다루는 방법도 점점 전문적이 되며 비싸진다. 비만 치료제 위고비는 국내 출시 9개월 만에 분기 매출 1천억 원을 넘겼고, 2025년 2분기 비만약 시장의 82%를 차지했다.7 뒤이어 마운자로가 들어와 가격 경쟁이 붙었지만 둘 다 건강보험이 안 되는 비급여 항목인 관계로, 올해 비만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는 ’비급여 사각지대’가 주요 의제로 올라왔다.

화장품 가게에서는 멜라토닌이나 GABA 같은 수면·스트레스 성분이 새로 뜨고, 해외 웰니스 업계에서는 얼마나 강하게 단련했느냐보다 얼마나 안정적으로 회복하느냐를 따지는 ’신경계 조절’이 올해의 키워드가 됐다. 웰니스라는 영역은 러닝, 등산, 수영과 같은 운동적 자기관리의 영역을 넘어 제약과 화학의 거대한 산업과 연결된 지 오래다.

올리브영N 성수동 매장 내의 '웰니스 에딧' 코너. 출처: 경향신문(CJ올리브영)

또 한편으로는 건강이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는 모습도 보인다. 『트렌드 코리아 2026』은 IQ와 EQ 다음으로 ’건강지능(HQ)’을 꼽았다. 올리브영에서 웰니스 상품을 사는 15~24세는 2022년부터 해마다 두 자릿수씩 늘었고8, 회사들도 직원 웰니스에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한 기업 웰니스 플랫폼은 1년 사이 고객사가 네 배로 늘었는데, 회사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들이는 이유로 젊은 직원의 퇴사를 막고 효율을 높이려 한다는 점을 꼽았다.9 건강은 몸 상태를 넘어 ‘얼마나 잘 관리하는 사람인지’ 보여 주는 스펙처럼 다뤄진다.

한국에서의 웰니스는 같이 하는 모임, 정부 정책, 약과 성분, 스펙으로서의 건강이 한데 뒤엉켜 커지고 있다. 정부는 건강을 국민의 과제로 내걸고, 더 나아가 정책적 기회로 여긴다. 기업은 웰니스에 포착되는 영역들을 발빠르게 상품으로 만들어 재생산하고, 사람들은 소외 속에서 그렇게 만들어진 웰니스 상품을 소비하며 정해진 만큼의 회복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건강’은 다시 사람의 가치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일하는 시간은 줄었는데 왜 더 바쁠까

웰니스라는 용어가 다소 어색하거나 낯설더라도, ’웰빙’이나 ’힐링’이라는 말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결국 웰니스는 웰빙과 힐링, 그리고 그 사이 스쳐 지나갔던 소확행, 저속노화 등의 키워드들과 같이 건강과 관련된 키워드들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거대한 사회적 건강 키워드들은 어떤 맥락 속에서 자라났는가?

'힐링'이라는 단어를 한국 사회에 유행시킨 SBS의 '힐링캠프'. 출처: SBS

지난 25년 동안 일터에서는 얼핏 보면 반대 방향인 두 가지 일이 같이 일어났다. 일자리는 계속 불안해졌는데, 일하는 시간은 계속 줄었다. 앞의 것은 노동을 유연하게 만들자는 쪽에서 밀어붙인 변화였고, 뒤의 것은 노동운동이 오랫동안 싸워 얻어낸 변화였다. 웰니스를 비롯해 웰빙, 힐링 등의 건강 키워드들은 이 두 변화가 겹친 자리와 더불어, 계속해서 불안해지는 사회경제적 구조 속에서 생겨났다.

불안해진 쪽부터 살펴보자. 1998년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가 법에 들어오면서 기업은 필요할 때 사람을 내보내고 필요한 만큼만 쓸 수 있게 됐다. 그 결과는 비정규직 숫자로 바로 드러났다. 2005년 비정규직은 548만 명, 임금노동자의 36.6%까지 늘었다. 짧게 일하는 일자리의 처우는 더 나빠졌다. 전일제 대비 시간제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2004년 83.9%에서 2013년 59.1%로 떨어졌고, 시간제 노동자 가운데 최저임금도 못 받는 사람의 비율은 같은 기간 17.2%에서 36.4%로 두 배 넘게 늘었다.10

이 흐름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26년 8월 기준 비정규직은 867만 명, 임금노동자의 38.5%로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많다.11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월급 차이는 2025년 180만8천 원으로 역대 가장 크게 벌어졌고, 15~34세 청년 정규직은 2년 연속 줄었다.12

2021-2025년 간 비정규직-정규직 임금격차 추이. 출처: 경향신문

그 사이 노동시간은 조금씩 줄었다. 2004년 7월 1천 명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부터 주5일제가 시작돼 2011년에는 5인 이상 사업장까지 넓어졌다. 2018년 7월에는 주 52시간 상한제가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들어와 2021년 7월 5인 이상 사업장까지 적용됐다. 한국 취업자가 1년 동안 일한 시간은 2015년 2,113시간에서 2025년 1,833시간으로 280시간 줄었다.13 여전히 OECD 평균보다 97시간 길고 회원국 가운데 여섯 번째로 오래 일하지만, 한 세대만에 토요일과 저녁 시간이 꽤 돌아온 건 분명하다.

그런데 이렇게 생긴 시간이 모두에게 같은 시간은 아니었다. 주5일제를 앞둔 2002년 현대경제연구원 조사에서 월 소득 201만 원 이상 가구는 쉬는 토요일을 가족 여가나 취미에 쓰겠다는 답이 대부분이었는데, 150만 원 이하 가구에서는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는 답이 8~13%, 아예 휴무를 반납하겠다는 답이 많게는 25%까지 나왔다.14 주5일제가 시작되던 2004년, 주간경향의 직장인 좌담에서는 뭘 배워도 돈이 나간다는 푸념과 함께 일요일 저녁 9시 뉴스만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는 ‘일요병’ 이야기가 나왔다.15

기업은 이 시간을 다른 눈으로 봤다. 당시 한 일간지 칼럼은 직원들이 늘어난 여유 시간을 자기계발에 쓰면 기업의 인적 경쟁력이 오히려 높아질 거라는 경영자들의 기대를 전했다.16 실제로 회사들은 주말 자기계발 강좌를 열어 직원들을 불러냈고, 2005년 문화관광부 조사에서는 주5일제를 겪은 사람의 62.2%가 늘어난 주말이 경제적으로 부담된다고 답했다.17

차량 키를 받고 있는 대리운전 기사. 출처: 경향신문

주 52시간제 도입 때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초과근무 수당으로 생계를 꾸리던 저임금 노동자들은 줄어든 월급을 메우려 퇴근 후 대리운전과 배달에 나섰다. 한 노동경제학자는 저녁이 있는 삶을 기대했더니 일을 두 개 해야 하는 삶이 됐다고 짚었다.18 2024년 1분기 부업을 한 취업자는 월평균 55만 명으로 1년 전보다 22.4% 늘어 처음으로 50만 명을 넘겼다.19

시간이 생겨도 그 시간을 누릴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소득 계층에 따라 시간 빈곤을 결정하는 요인이 다르다는 것은 이미 정설이다. 고학력·고소득 부모일수록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길고 그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까지 보면, 시간도 돈처럼 위로 쏠린다. 앞에서 본 것처럼 운동을 아예 하지 않는 사람 중 절반이 넘게 “시간이 없다”고 답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2000년대 초 웰빙부터 지금 웰니스까지 이어진 유행들을 우연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름은 계속 바뀌었지만, 매번 그 시기의 불안이 있었고 그 불안을 각자 몸과 마음으로 받아내는 방식들이었던 것이다.

2004년 중앙일보가 정리한 주요 '웰빙 산업'과 2024년 세계 '웰니스 산업'의 규모. 출처: 중앙일보 / 경향신문

웰빙이라는 말이 퍼진 2003-2004년은 공교롭게도 주5일제가 시작되고 비정규직이 빠르게 늘던 때다. 2008년 금융위기 뒤에는 힐링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2012년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0권 가운데 5권이 힐링을 내건 책이었다.20 2017-2018년에는 ’소확행’과 ’워라밸’이 나왔다. 주 52시간제 법안이 통과되고 시행되던 바로 그 시기다.

코로나가 오자 ’갓생’과 ’오운완’이 등장했다. 방에 갇혀 무기력해진 사람들이 미라클 모닝과 홈트로 하루를 붙잡았다. 그리고 지금 이 열풍은 저속노화를 넘어 웰니스에 도달했다. 초고령사회에 들어서면서 노후 걱정이 20~30대까지 내려왔고, 2025년 온라인에서 ’노후’를 언급한 글은 1년 새 181%, ’저속노화’는 94% 늘었다.

앞날을 기대하기 어려운 세대가, 살아남는 것 자체를 삶의 목표로 삼게 된 타의적 상황. 웰니스는 그 상황이 개인의 몸으로 내려온 모습에 가까울 것이다. 일자리는 흔들리고 앞날은 잘 안 보이는데, 제도 덕분에 시간은 조금 생겼다. 그 시간에 그나마 확실하게 투자할 수 있는 게 내 몸이었다.

그래서 웰니스를 허세나 한때의 유행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불안한 구조 속에서 각자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에 가깝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노동시간을 줄여 어렵게 얻은 저녁이 결국 내일 또 일할 몸을 정비하는 데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운동이 되찾아 온 시간이 다시 노동을 위한 시간으로 돌아가고 있다.


웰니스 비판을 넘어서

연세대 『문우』 72호에 실린 「건강 중심 세계에서, 다시 중심 잡기」(2025)21에서, 필자는 좋아하던 마라탕 국물을 먹을 때마다 머릿속에서 ’혈당 스파이크’라는 말이 들린다는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다. 저속노화는 원래 긴 노동시간과 초가공식품에 둘러싸인 ’가속 사회’를 문제 삼는 이야기였는데, 퍼지는 과정에서 사회적인 맥락은 빠지고 먹어도 되는 음식과 안 되는 음식을 나누는 식단 규칙만 남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이른바 '저속노화식단'. 출처: 국제신문

필자는 여기서 ’통제의 환상’이라는 문제를 꺼낸다. 노력하면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 사회에서는 아픈 몸이 노력하지 않은 몸으로 취급된다. 긴 노동시간이나 나쁜 환경, 형편이 어려울수록 가공식품에 기댈 수밖에 없는 사정 같은 건 잘 보이지 않게 되고, 책임은 개인에게 돌아간다. 필자는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건강에 매달리는 이유를 아프기 어렵고 아프면 힘든 현실에서 찾고, ‘질병권’, 그러니까 아플 권리를 대안으로 든다.

건강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자본주의적 논리에 대한 비판은 이미 수도 없이 등장해 왔다. 그러나 건강과 회복까지 포함한 총체적인 자기관리인 웰니스 트렌드까지 도달한 오늘날에는, 이런 비판조차 개인의 깨달음에 머물고 만다. 관리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같은 다짐도 결국 각자 혼자 해내야 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외 웰니스 업계는 올해 ’과잉 최적화에 대한 반발’을 새 트렌드로 발표했다.22 관리를 내려놓는 방법도 상품으로 팔 수 있다는 얘기다.


혼자 말고, 함께 쉬자

그렇다면 이 웰니스의 시대에서 ‘혼자’ 애쓰지 않아도 되는 자리, 같이 쉴 수 있는 자리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웰니스 유행에서 하나 주목하고 싶은 게 있다면, 사람들이 혼자보다 같이 땀을 흘리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이 마음을 브랜드와 멤버십에만 맡겨 두는 것은 아쉽다. 거창한 설계까지는 어렵더라도, 몇 가지 생각해 볼 만한 방향은 있다.

포시즌스 호텔의 고가 멤버십 사우나. 출처: 포시즌스 서울

먼저 회복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을 늘리는 일이다. 동네 목욕탕은 하나둘 문을 닫는데, 도심에는 멤버십과 굿즈를 갖춘 사우나가 새로 생기고 있다. 반포종합운동장이 5인 이상 단체 달리기를 막았을 때 러너들은 “운동장 말고 어디서 같이 훈련하냐”고 반발했다. 매너 문제로 보도됐지만, 이는 결국 같이 운동할 공공의 운동공간이 모자라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국민생활체육조사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자주 이용하는 체육시설은 공공체육시설이었고, 시설을 고르는 이유로는 ’가까워서’와 ’싸서’가 각각 1, 2위였다. 지자체가 할 일은 ’매너 현수막’을 거는 것보다 저녁에도 열린 운동장과 공공 목욕탕을 늘리는 일이어야 한다. 농촌의 마을 공동목욕탕과 같은 공간 역시 복지이면서 동시에 모두가 함께 쓰는 커먼즈로서 다시 한번 돌아볼 만하다.

해외에는 돈이 거의 들지 않는 모임의 예도 있다. 2004년 영국에서 시작된 ’파크런’은 토요일 아침마다 동네 공원에서 5km를 같이 달리는 모임인데, 참가비가 없고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며 걸어서 참여해도 된다. 헬싱키의 ’솜파사우나’는 시민들이 직접 지어 함께 관리하는 무료 사우나다. 화려한 단체복이나 거창한 멤버십 없이도 같이 땀 흘리는 모임은 충분히 가능하다.

핀란드 헬싱키의 공용 사우나 '솜파사우나'. 출처: https://whatfinland.com/

진보는 오랫동안 노동시간을 줄이자고 말해 왔다. 이제는 그렇게 생긴 시간을 같이 어떻게 쓸지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독일 노동자들은 노동자를 받아 주지 않던 민족주의 체조협회에 맞서 19세기 말부터 자기들만의 체조클럽을 꾸렸고, 이 클럽들이 모인 노동자체조·스포츠연맹은 바이마르 시기인 1922년 라이프치히에서 첫 노동자 체조·스포츠 축제를 열어 15개국에서 10만 명을 모았다. 노동조합이나 지역 단체, 진보정당이 회의와 집회 말고도 같이 걷고 뛰고 씻는 시간을 꾸린다면, 그 모임은 웰니스 시장이 팔 수 없는 종류의 모임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논의의 기반은 결국 다시 공공성으로 돌아간다. 공공성이 빠진 채 커지는 모임은 배타적인 공간이 되기 쉽다. 산책로에서 비켜 달라고 외치는 러닝크루와 시민 사이의 실랑이도 그런 모습의 일부다. 해외에서는 웰니스 커뮤니티가 병원과 정부에 대한 불신을 타고 음모론과 극우 정치로 이어진 사례가 있다.23 한국에서도 대형교회가 주도한 웰빙 문화가 보수정치의 한 기반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다.24


가끔은 ‘대충 쉬어도 되는’ 세상을 향해서

19세기의 노동운동은 하루를 셋으로 나눴다. 8시간은 일하고, 8시간은 쉬고, 나머지 8시간은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자는 것이었다. 마지막 8시간에는 딱히 목적이 없었다. 그냥 내 시간이었다.

지금의 웰니스 열풍을 보고 있으면 쉬는 시간과 그 ’내 시간’이 한데 섞여 버린 듯하다. 쉬는 것도, 좋아하는 걸 하는 것도 결국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관리가 된다. 기록을 재지 않고 그냥 뛰는 저녁이나 이 정도면 괜찮다 싶은 몸은 자리 잡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노동시간을 줄이자고 말해 온 쪽에서 이제 해 볼 만한 질문은, ’그렇게 생긴 시간에 우리가 같이 뭘 하자고 말할 수 있을까?’가 아닐까. 거창한 답이 필요하지는 않은 듯하다. 동네 목욕탕 하나, 토요일 아침 공원 달리기 모임 하나 정도면 시작으로는 충분하다. 다들 열심히 일하고, 달리고, 쉬는 요즘, 가끔은 다 같이 대충 쉬어도 괜찮은 세상이었으면 싶다.


최상희

현 정의당 강원도당 사무처장, 춘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

강원도 춘천에서 지역운동, 지역 진보정치의 가능성을 고민하고 있다.

Footnotes

  1. 문화일보, ‘러닝크루 민폐’ 논란에 “5인 이상 NO”…안전위해 당연 vs 과도 https://www.munhwa.com/article/11457629 ↩

  2. 뉴시스, AI 이후 인간 중심 전환·초개인화 시대…내년 한국 사회 트렌드 https://www.newsis.com/view/NISX20251231_0003460707 ↩

  3. The Korea Times S. Korea’s yearly working hours fall by 32 hours last year but remain longer than OECD average https://www.koreatimes.co.kr/amp/southkorea/20260705/s-koreas-yearly-working-hours-fall-by-32-hours-last-year-but-remain-longer-than-oecd-average ↩

  4. 문화체육관광부, 2025년 국민생활체육조사 https://www.mcst.go.kr/site/s_policy/subPolicy/sportstour/sportstour29.jsp?pSeq=91 ↩

  5. 헤럴드경제, ‘시간 빈곤’ 대한민국, 일하고 애보느라…국민 13% ‘운동 전혀 안한다’ https://www.heraldk.com/article/2026032620300039863 ↩

  6. 파이낸셜뉴스, “제발 길만 막지 마라”…‘슬로우러닝’ 열풍, “비켜요” 고성 사라졌지만 https://www.fnnews.com/news/202609030623599763 ↩

  7. 데일리팜, ‘위고비’ 6개월 매출 2100억…비만약 시장 점유율 82% https://m.dailypharm.com/user/news/2847 ↩

  8. 데일리안, “’온전한 나’에 집중” 25·26년 K뷰티 키워드는 ‘F.U.L.L.M.O.O.N’ https://www.dailian.co.kr/news/view/1590455/ ↩

  9. 얼루어 코리아, 지속가능한 직장 생활 https://www.allurekorea.com/?p=223601 ↩

  10. 서울신문, “시간제 일자리 확대로 저소득 가구 빈곤 심화” https://m.go.seoul.co.kr/news/2016/01/01/20160101022009 ↩

  11.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월간복지동향, 나의 상황과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표와 시간주권 https://peoplepower21.org/welfarenow/1947093 ↩

  12. 뉴시스, 비정규직 월급 4만원 오를때 정규직은 10만원…격차 181만원 최대 https://www.newsis.com/view/NISX20251022_0003372275 ↩

  13. 프레시안, 韓 노동시간 OECD 2위…日보다 두달 더 일하고 임금은 4분의3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40075 ↩

  14. 현대경제연구원, 가계생활지수와 주5일 근무제 실시로 인한 소비 변화 https://test.hri.co.kr/upload/board/VPR200210_02.pdf ↩

  15. 주간경향, 시사수다: 주5일 근무제 https://weekly.khan.co.kr/article/7451 ↩

  16. 매일신문, 3040광장-주5일 근무와 자기 발견 https://www.imaeil.com/page/view/2005070416471588407 ↩

  17. 경기일보, 천자춘추/보람찬 주말을 위한 斷想 https://www.kyeonggi.com/article/200505270004278 ↩

  18. 아시아경제, ‘저녁 있는 삶’ 아닌 ’두번 출근하는 삶’에 놓인 청년들 https://medigatenews.com/stand/21862 ↩

  19. 경기일보, 부업 뛰는 ‘N잡러’ 50만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40513580360 ↩

  20. 주간경향, 힐링서적 강세 속 소설 약진 https://weekly.khan.co.kr/article/201312241456241 ↩

  21. 연세 문우편집위원회, 문우 72호, 건강 중심 세계에서, 다시 중심 잡기 https://brunch.co.kr/@yonseimunu/195 ↩

  22. SuperAge, Wellness is finally admitting it got the last decade wronghttps://superage.com/wellness-is-finally-admitting-it-got-the-last-decade-wrong/ ↩

  23. Baker, S. A. (2022). Wellness culture: How the wellness movement has been used to empower, profit and misinform ↩

  24. 주간경향, 웰빙-우파와 대형교회 https://weekly.khan.co.kr/series/ns0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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