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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돋아나다》 - '머리카락 자본주의'

문화/도모서재

소설 《돋아나다》 - '머리카락 자본주의'

나경채·읽기 7분

나에게도 머리카락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전 세계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다는 소설을 아주 태연하게 읽기는 어려웠다. 다카세 준코의 《돋아나다》다.

처음에는 솔직히 조금 통쾌했다. 이런 세상이 오면 적어도 머리숱 때문에 누구 앞에서 주눅들 일은 없겠구나. 탈모가 더 이상 탈모가 아니게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치료제를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대머리가 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미 나는 마치카의 편이다.


《돋아나다》의 주인공 마치카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적은 머리숱을 의식하며 살아왔다. 남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차이일지 모르지만, 한번 자신의 결핍이라고 여기기 시작한 사람에게 그것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특히 머리숱이 많은 친구 데라가 그렇다. 마치카는 데라를 좋아하지만, 그 마음에는 부러움과 질투도 섞여 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데라는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다.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과 조금 미워하고 싶은 마음이 함께 존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몇 사람의 이상한 증상이었는데 곧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된다. 그런데 마치카에게 그것은 재난인 동시에 해방이다.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혀온 차이가 사라지고, 마침내 데라의 머리카락도 빠진다.

이때 다카세 준코는 마치카를 ’착한 피해자’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나는 그 점이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았다. 마치카는 안도하고, 어쩌면 조금 기뻐한다. 그래서 불편한 질문이 생긴다. 마치카가 원했던 것은 정말 머리카락 때문에 아무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이 부러워했던 사람들마저 마침내 자신과 같아진 세상이었을까.

내가 올라가는 것과 남이 내려오는 것은 다르다. 내가 가진 결핍이 사라지는 것과 모든 사람이 그 결핍을 갖게 되는 것도 다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언제나 그렇게 반듯하지는 않다. 나보다 나아 보였던 사람이 어느 날 나와 비슷해졌을 때 느끼는 작은 안도감.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쁨. 다카세 준코는 그 조금은 못되고 조금은 슬픈 마음을 태연하게 들여다본다.

그래서 읽는 동안 자꾸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가 생각났다. 두 소설은 놀랄 만큼 비슷한 곳에서 출발한다. 어느 날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눈이 멀고, 어느 날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머리카락을 잃는다. 두 작품 모두 원인에는 별 관심이 없다. 궁금한 것은 그 다음이다. 세계의 조건 하나를 바꾸어놓으면 인간은 어떻게 행동할까?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와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2008년작 영화

그런데 두 소설은 서로 정반대 방향으로 간다. 사라마구의 세계에서는 눈이 멀자 문명이 무너진다. 사람들은 격리되고 굶주리며, 식량을 독점한 사람들이 권력을 쥔다. 폭력과 약탈, 성폭력이 이어진다. 사라마구가 인간에게서 문명의 옷을 하나씩 벗겨낸다면, 다카세 준코의 사람들은 머리카락이 빠지는데도 출근한다. 밥을 먹고 친구를 만나고 목욕탕에 가고 가발을 산다. 다카세 준코의 세계에서는 종말이 와도 월요일에는 출근해야 한다.

나는 오히려 이쪽이 조금 더 무섭다. 《눈먼 자들의 도시》의 공포가 세상이 무너지는 데서 온다면, 《돋아나다》의 공포는 세상이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데서 온다. 엄청난 일이 벌어져도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빨리 적응하고, 시장도 적응한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돋아나다》 쪽이 우리가 사는 세계에 가까운 리얼리즘인지도 모르겠다.


모두의 머리카락이 빠지면 탈모산업은 망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의 결핍이 사라지면 시장은 또 다른 결핍을 발견할 테니까. 가발을 팔고, 새로운 관리법과 미적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 다시 불안을 판매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현대 자본주의가 외모를 다루는 방법은 꽤 기막히다. 먼저 차이를 발견한다. 그 차이에 순위를 매기고, 정상과 비정상, 아름다움과 추함, 젊음과 늙음으로 번역한다. 그리고 순위의 아래쪽에 놓인 사람에게 아주 친절하게 말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구매하시면 됩니다.”

피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장품을 사고, 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이어트 상품을 사고,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성형을 하고, 머리가 빠지면 약을 먹고 가발을 산다. 우리는 필요가 있기 때문에 상품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순서가 반대다. 상품을 팔기 위해 필요를 만들고, 그 필요를 만들기 위해 지금의 내가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한다.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상품보다 먼저 ’부족한 나’가 필요하다. 자본주의의 놀라운 능력은 차이를 만들어내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결핍으로 번역하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가 떠올랐다. 버거는 광고가 현재의 나와 상품을 소유한 미래의 나 사이에 간극을 만들어낸다는 점에 주목했다. 더 매력적이고 행복하고 부러움의 대상이 된 미래의 나를 팔기 위해서는 하나의 전제가 필요하다. 지금의 나는 충분하지 않다. 지금의 얼굴은 충분히 아름답지 않고, 몸은 충분히 날씬하지 않으며, 피부는 충분히 젊지 않다. 그리고 머리에는 충분한 머리카락이 없다. 그렇다면 외모산업이 가장 먼저 파는 상품은 화장품도, 다이어트 식품도, 탈모약도 아닐 것이다. 현재의 나에 대한 불만을 먼저 판다. 몸의 차이를 인간 전체의 결핍으로 번역하고, 바로 그 순간 시장이 들어온다.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

그런 의미에서 마치카의 열등감과 데라를 향한 질투를 단순히 개인의 못난 감정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마치카의 마음속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광고, 아름다움에 관한 사회의 기준이 들어가 있다.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정상인지, 어떤 몸을 가져야 사랑받을 만한지를 사회가 오랫동안 가르쳐왔다. 사회가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 자기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것을 취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돋아나다》를 인간은 원래 남과 비교하고 위계를 만드는 존재라는 이야기로 읽고 싶지는 않았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눈이 멀었다고 이전 세계에서 배운 권력관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돋아나다》에서도 머리카락이 빠졌다고 아름다움과 정상성에 대해 평생 학습한 감각까지 빠지는 것은 아니다. 눈은 멀었지만 이전 세계는 머릿속에 남아있고, 머리카락은 빠졌지만 역시 이전 세계는 머릿속에 남아있다.

인간이 원래 위계를 만드는 존재라고 말하는 순간 인간이 만든 사회질서는 자연의 질서로 둔갑하기 쉽다. 하지만 차이는 자연스러워도 위계는 자연스럽지 않다. 키와 피부색, 몸과 머리카락이 다른 것은 차이다. 그 가운데 무엇을 아름답다고 부르고, 어떤 몸에 더 높은 가치를 매기고, 어떤 차이를 이유로 더 많은 기회와 존중을 줄 것인지는 사회가 결정한다.

그런데 《돋아나다》는 여기서 이야기를 한번 더 뒤집는다. 모두가 대머리가 된 세계에서 마치카의 머리카락이 다시 돋아나기 시작한다. 평생 갖고 싶었던 것이 생겼는데 기쁘지가 않다. 과거에는 머리카락이 적다는 것이 마치카의 결핍이었다. 그런데 모두가 대머리가 되자 머리카락이 없는 것이 정상이 되고, 이제 머리카락이 자라는 마치카가 이상한 사람이 된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머리카락 몇 올이 증명한다.

여기서 《눈먼 자들의 도시》와 《돋아나다》는 다시 기묘하게 만난다. 전자에는 모두가 눈먼 세계에서 혼자 볼 수 있는 ’의사의 아내’가 있고, 후자에는 모두가 대머리가 된 세계에서 다시 머리카락이 자라는 마치카가 있다. 모두가 같아진 세계에 다시 차이가 출현한다.


모두가 똑같아지면 우리는 평등해질까? 아닌 것 같다. 평등은 모두의 머리카락을 똑같이 밀어버리는 일이 아니다. 마치카가 잠시 느꼈던 해방처럼 나를 괴롭히던 결핍을 다른 사람도 갖게 되는 것 역시 평등은 아니다. 평등은 차이가 존재하더라도 그 차이가 위계로 번역되지 않는 상태에 더 가까울 것이다. 머리카락이 있든 없든, 예쁘든 그렇지 않든, 늙었든 젊었든 그것이 한 사람의 가치와 권리를 결정하지 않는 것.

그렇게 생각하니 제목도 재미있다. 《돋아나다》. 마치카에게 다시 돋아난 것은 머리카락이지만, 독자에게 돋아나는 것은 질문이다. 내가 나의 결핍이라고 생각하는 것 가운데 정말 나에게서 시작된 것은 얼마나 될까. 나는 누구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을까.

어쩌면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가장 성공적으로 판매한 상품은 물건이 아니라 ’조금 더 나아진 나’에 대한 끝없는 욕망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머리카락이 모두 빠진다고 자본주의까지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자본주의는 아마 대머리에 어울리는 더 멋진 상품을 만들어낼 것이다.

《돋아나다》를 다 읽었다. 내 머리카락은 아직 돋아나지 않았다. 그래도 전 세계 사람들의 머리가 빠지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머리카락 따위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 세계를 만드는 편이 조금 더 현실적일 것 같다. 아마도.


돋아나다

다카세 준코 저 / 박우주 옮김 / 문학동네 / 2026

’도모서재’는 다양한 독자들이 추천하는 수많은 책 속에서 때로는 세상을 꿰뚫는 날카로움을, 때로는 마음을 울리는 연대의 따스함을 찾고자 하는 웹진 도모의 도서 리뷰 코너입니다. ’도모서재’에 서평을 기고하고자 하시는 분께서는 이도영 편집장(ldy0510@naver.com)에게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나경채

현재 정의당 기획실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 ’소설 100페이지 읽기’를 루틴으로 삼고 있기도 합니다. 바쁜 일상에 밀려 이 다짐을 완벽하게 지키지는 못할지라도, 책장을 넘기는 시간만큼은 생활을 지탱하는 단단한 버팀목이 됩니다. 북클럽을 만드는 것이 오랜 희망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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